문나이트 (Moon Knight, 2022)
줄거리
『문나이트』는 평범한 박물관 선물가게 직원인 스티븐 그랜트의 혼란스러운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주 이유 없이 깨어난 뒤 기억나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이 다른 삶을 살았던 흔적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러던 중 거울 속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하게 되고, 자신이 해리성 정체장애(DID)를 앓고 있으며, 또 다른 인격인 마크 스펙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크는 전직 용병이자 고대 이집트의 달의 신 콘슈(Khonshu)의 아바타인 문나이트로 활동하고 있었고, 악인을 심판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두 인격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격렬히 충돌하지만, 신 아미트를 부활시키려는 종교 지도자 아서 해로우의 위협 앞에 결국 협력하게 된다. 해로우는 아미트의 의지를 따라 사람들을 과거가 아닌 미래의 죄까지 심판하려는 극단적인 정의를 추구한다. 마크와 스티븐은 이집트로 향해 해로우의 계획을 저지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과거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두 인격이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마크는 동생의 죽음과 어머니의 학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티븐이라는 인격을 만들어낸 것이 밝혀진다.
시즌 후반부에는 저승 세계에 해당하는 듀아트(Duat)가 등장하고, 스티븐이 그곳에서 사라지며 마크는 그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결국 두 인격은 화해하고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되는 듯 보이나, 마지막에는 제3의 인격인 제이크 록클리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며 시즌이 마무리된다.
이중성
『문나이트』는 전통적인 마블 히어로 서사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이 드라마는 초능력과 액션보다는 인간 내면의 상처와 자아의 분열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특히 스티븐과 마크 두 인격은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그 차이는 시청자에게 혼란과 동시에 몰입을 선사한다. 스티븐은 내성적이고 도덕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로,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가진 박물관 직원이다. 반면 마크는 군 경력과 용병 생활을 통해 세상의 어두운 면을 체험한 인물로, 콘슈의 명령에 따라 폭력을 불사하며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이 둘은 처음엔 서로를 거부하지만, 위협적인 적과 마주하고 또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어머니의 학대가 마크로 하여금 스티븐이라는 인격을 만들어내게 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신질환 묘사를 넘어서 인간의 생존 본능과 자기보호 기제를 드러낸다. 오스카 아이작은 두 인격을 넘나들며 목소리, 표정, 태도까지 완전히 다르게 표현하며 극의 설득력을 높인다.
결국 문나이트는 초능력자 영웅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인물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은 모든 인간이 겪는 ‘자신과의 화해’라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되며, 시청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마블이라는 틀 안에서 이처럼 인간 중심의 서사를 풀어낸 작품은 드물며, 『문나이트』는 MCU 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집트 신화
『문나이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집트 신화를 중심에 둔 독특한 세계관이다. 기존 MCU가 북유럽 신화(토르)나 과학기술 중심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고대 신들의 세계를 현대 사회에 접목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크가 섬기는 콘슈는 달의 신으로, 인간의 정의를 대리 집행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마크를 선택해 아바타로 만든다. 여기에 아서 해로우가 따르는 아미트는 미래의 죄까지 미리 심판하겠다는 이상을 지닌 신으로, 두 신과 인간 사이의 대리전은 단순한 선악 대결을 넘어서 도덕적 딜레마로 확장된다.
콘슈는 자유의지와 선택을 강조하는 반면, 아미트는 운명론적 통제를 신봉한다. 이 대비는 현실 세계의 법과 정의,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또한 드라마는 이집트의 사후세계, 심판의 저울, 신전과 미라 등을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구현하며, 관객에게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스티븐과 마크가 죽음 이후 도달하는 사후 세계 듀아트와 그곳에서의 여정은 마블 유니버스 내에서 보기 드문 서사적 실험이다.
이러한 신화적 요소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 변화와 맞물려 서사의 필수 요소로 작동한다. 문나이트는 결국 초인적 능력을 사용하지만, 그것의 근원은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기반하며, 이는 히어로물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마블은 『문나이트』를 통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서사구조와 테마에 도전했으며, 이는 MCU의 다변화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스핀오프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신화를 이룬 마블의 또 다른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