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쉬헐크 (She-Hulk: Attorney at Law, 2022)
줄거리
『변호사 쉬헐크』는 브루스 배너, 즉 헐크의 사촌인 제니퍼 월터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유능한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어느 날 사촌 브루스와의 자동차 사고로 그의 피가 몸에 유입되면서 헐크화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제니퍼는 처음엔 변화를 거부하며 평범한 삶을 유지하려 하지만, 초인적인 존재들을 법적으로 다루는 전문 로펌에 스카우트되며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이후 "쉬헐크"라는 별칭으로 알려지며,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의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다.
시즌 전반은 에피소드 단위의 소송과 법정 드라마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아보미네이션(에밀 블론스키), 매직 사용자 웡, 헐크킹이라는 인터넷 남성우월주의 집단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제니퍼를 곤경에 빠뜨린다. 그녀는 슈퍼히어로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적 인식,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간다.
드라마는 전통적인 히어로물에서 벗어나 법정 코미디와 여성 성장담, 자기풍자적 메타 유머를 결합한 독특한 연출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제니퍼가 메타적으로 ‘케빈(KEVIN)’이라는 인공지능 마블 서사 관리자와 대면해 자신이 출연 중인 드라마의 결말을 스스로 수정하는 파격적인 전개가 이루어지며, 마블 내에서도 전례 없는 파괴적 서사를 시도한다.
법정 히어로
『변호사 쉬헐크』는 단순한 히어로물이라기보다, 현대 사회 속 여성과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자아 찾기를 중심에 둔 작품이다. 주인공 제니퍼 월터스는 기존 마블 히어로들과 달리, 초능력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는 그것을 원치도 않는다. 그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변호사로 살고 싶다”고 선언하며, 자신이 새로 획득한 힘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쉬헐크’로 규정하고, 대중의 시선과 기대 속에 점점 원치 않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변호사로서의 능력과 초능력자의 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그녀의 고민은, 전문성과 정체성, 여성성과 대중 이미지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초능력을 발휘할 때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현실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중적 기준과 연관된다. 제니퍼는 직장 내 성차별, 인터넷 혐오 댓글, 남성 중심의 법률 시스템 속에서 싸우면서도, 유머와 뚝심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여기서 드라마는 진지한 법정 드라마와 일상 코미디의 경계를 넘나들며, ‘슈퍼히어로=세상의 구원자’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평범한 영웅’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니퍼는 초능력자이면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인물로, 많은 시청자에게 현실감과 공감을 안긴다. 『변호사 쉬헐크』는 결국 ‘강한 여성’의 전형이 아닌,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써나가는 능동적 여성 캐릭터의 재정의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형식
『변호사 쉬헐크』는 마블 작품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메타적 서사 실험을 감행한 드라마다. 제니퍼는 종종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며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4차 벽 허물기’(breaking the fourth wall)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마블의 기존 서사 문법을 조롱하고 동시에 해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연출은 기존의 MCU 팬들에게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드라마의 핵심 의도는 기존의 ‘마블 공식’을 되묻고 재해석하는 데 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제니퍼는 디즈니+ 홈 화면을 뚫고 나오며, 제작진과 마블의 서사 자체를 구성하는 AI인 ‘K.E.V.I.N’과 대화를 나눈다. 이는 단순한 유머를 넘어, 히어로물의 전형성과 클리셰, 마블의 스토리 구조에 대한 비판적 풍자로 작용한다. 마블이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여유와 용기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며, 동시에 드라마가 단순히 마블 유니버스의 일부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장르 실험임을 선언한다.
또한 작품은 SNS 문화,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공격성, 대중의 이중잣대 등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지금 이 시대의 여성 서사가 겪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쉬헐크는 결국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히어로로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기존 히어로물의 ‘마지막 전투 → 대규모 전투씬 → 악당 격퇴’라는 공식을 과감히 깨부순다. 이러한 시도는 일부 팬층의 호불호를 불러왔지만, 분명히 마블 내에서 의미 있는 진화를 보여준 실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