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 2021)
줄거리
영화는 수천 년 동안 텐 링즈라는 신비한 무기를 통해 강력한 힘과 불로불사의 생명을 얻은 웬우(양조위)가 세운 조직 '텐 링즈'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웬우는 과거 수많은 전쟁과 정복을 통해 권력을 쌓았으나, 신비한 마을 '탈로'에서 만난 인리(진법랍)와 사랑에 빠지면서 조직에서 물러나 가족과 평범한 삶을 꾸립니다.
그러나 인리가 의문의 세력에게 죽임을 당하자 웬우는 다시 텐 링즈를 손에 넣고 어둠의 길로 돌아섭니다. 한편, 아들 샹치(시무 리우)는 어린 시절 혹독한 무술 훈련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집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숀'이라는 가명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의 부하들이 그를 습격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샹치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전설의 마을 탈로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동생 샤링(맹가 장)과 함께 이를 막기 위해 탈로로 향합니다. 탈로에서 어머니의 고향 사람들과 전설적인 생명체들을 만나게 되며, 샹치는 자신 안에 흐르는 두 세계의 힘을 자각하게 됩니다. 웬우는 탈로를 공격하고, 금지된 영역을 열려는 시도를 하며 최후의 위협을 불러오게 되는데, 샹치는 아버지를 막고 세상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나섭니다. 마지막에는 웬우가 샹치에게 텐 링즈를 넘겨주며 죽음을 맞이하고, 샹치는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게 됩니다.
내면의 성장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최초의 아시아계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단순한 캐릭터의 탄생을 넘어서 가족, 과거, 정체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샹치는 천 년 넘게 텐 링즈를 통해 세상을 지배해 온 전설적인 존재 웬우의 아들이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명령 아래 암살자 훈련을 받고 자라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친다.
영화는 그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도망치는 삶’에서 ‘직면하고 극복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내면의 성장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처음에는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던 샹치는, 여동생과 재회하고, 아버지와 다시 충돌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혼란과 분노를 겪는다. 특히 웬우가 어머니의 죽음을 부정하며, 죽은 이를 되살리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려는 모습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이 독이 되어버린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샹치는 단지 과거를 끊어내는 것이 아닌, 과거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부로 삼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폭력의 유산이 아닌, 어머니로부터 배운 조화와 균형,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웅으로 성장한다. 이는 전통적인 히어로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자아의 재해석으로, 유산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초월해 나아가는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샹치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이 영화는 단지 히어로의 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여정을 정서적으로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이 때문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단순한 마블 유입작 이상의 성숙한 서사를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계관 확장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MCU가 본격적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시각적 확장을 시도한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는 미국 서부 도시의 현실적 배경과 더불어, 전설 속 마을 ‘탈로(Ta Lo)’와 같은 판타지 공간을 통해 기존 마블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동양적 상징과 신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탈로는 중국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듯한 신비한 숲과 신수들,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보여주며, 웬우가 상징하는 강압과 정복의 세계관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전통 무협영화의 유려한 동작과 현대적 VFX 기술이 결합된 형태로, 보는 이로 하여금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시각적 몰입감을 제공한다. 텐 링즈라는 무기는 단순한 물리적 힘 이상의 상징성을 가진다. 웬우에게는 지배와 불멸을 의미했지만, 샹치가 이를 계승하면서 그 의미는 보호와 조화로 전환된다.
이는 권력의 방식이 세대를 거치며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수호룡과 어둠의 괴물의 전투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무형의 악—즉 고통과 상실이 만들어낸 환상에 대한 싸움으로 확장된다. 샹치는 단순히 물리적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두려움과 책임, 가족에 대한 감정적 유산을 초월해야만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동양 철학에서 강조하는 ‘균형’과 ‘조화’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으며, 마블이라는 서구 중심의 프랜차이즈가 새로운 문화적 언어를 품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문화적 정체성을 자산으로 삼되, 글로벌 관객에게 보편적인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히어로 영화이며, 마블이 향후 다양한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입증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