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라그나로크 (Thor: Ragnarok, 2017)
줄거리
토르는 수르트르를 물리치고 라그나로크(아스가르드의 종말)를 막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 오딘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는 로키와 함께 오딘을 찾아 나서고, 결국 지구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움을 받아 노르웨이에서 오딘을 만난다. 오딘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봉인된 첫째 딸 '헬라'가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곧 사망한다.
헬라는 나타나자마자 묠니르를 부수고, 토르와 로키를 압도해 아스가르드로 돌아가 왕위를 차지한다. 토르와 로키는 비프로스트에서 탈출하려다 우주 공간으로 내던져지며, 사카아르 행성에 불시착한다. 토르는 그곳에서 강력한 전사 발키리에게 붙잡혀 검투사로 팔려가고, 사카아르의 통치자인 '그랜드마스터'의 경기장에서 헐크와 맞닥뜨린다.
토르는 헐크와 싸우며 재회의 기쁨을 느끼지만, 결국 패배한다. 이후 브루스 배너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그는 토르, 발키리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이들은 '리벤저스'를 결성하고, 아스가르드를 구하기 위해 헬라와 맞서기로 한다.
아스가르드로 돌아온 토르는 헬라와 싸우지만 그녀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수르트르를 부활시켜 아스가르드를 파괴함으로써 헬라를 제거한다. 영화는 토르가 생존자들과 함께 지구를 향해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며, 쿠키 영상에서는 타노스의 함선이 등장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진정한 힘
『토르: 라그나로크』는 주인공 토르의 본질적 성장을 다룬 작품으로, 그 중심에는 ‘묠니르의 상실’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있다. 이전까지 토르는 묠니르, 즉 마법의 망치를 자신의 힘의 원천으로 믿고 있었고, 그것이 없으면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초반, 여신 헬라에 의해 묠니르가 파괴되면서 그는 정신적·물리적으로 큰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그 상실은 곧 자아의 재정립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카아르 행성에서 노예처럼 붙잡혀 싸움을 강요받는 가운데, 단순한 전사로서가 아닌, 아스가르드의 수호자로서의 사명감을 되찾는다. 특히 헐크와의 전투 중 전기 에너지로 각성하는 장면은 ‘천둥의 신’으로서의 본래 능력이 도구에 의존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오딘과의 환영 속 대화를 통해 “넌 망치의 신이 아니라, 천둥의 신”이라는 말을 들은 토르는 비로소 자신의 본질적 힘과 책임을 자각한다.
그 과정은 외적인 무기를 잃고 내면의 힘을 되찾는 여정이며, 영웅의 자격이 외형이 아닌 의지와 자기 이해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MCU 전체에서도 주목할 만한 캐릭터 성장의 순간으로, 토르는 비로소 왕으로서, 지도자로서 진정한 자리를 찾아간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이러한 내면의 여정을 유머와 액션, 그리고 색다른 연출로 풀어내면서, 토르가 단순한 근육질의 신을 넘어 복합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다.
웃음과 혁신
『토르: 라그나로크』는 ‘세계의 멸망’이라는 무거운 신화적 서사를 다루면서도, 그 전개 방식은 기존 히어로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유쾌하고 과감한 톤으로 진행된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진지함 대신 위트를 앞세우며, 이전 시리즈보다 훨씬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토르의 세계를 재구성했다. 아스가르드가 파괴되고, 신들이 몰락하며, 악의 화신 헬라가 등장하는 이 암울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까지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는다.
캐릭터 간의 대화는 끊임없는 유머와 풍자로 가득하며, 심지어 전투 장면마저도 뮤직비디오처럼 시각적으로 유쾌하게 연출된다. 특히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마지막 전투 장면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에너지, 흥분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접근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겁고 어두운 내용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게 하며, 동시에 MCU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상징하는 사례가 된다.
더불어 코르그, 발키리, 그리고 헐크 등 개성 넘치는 조연들의 등장은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며, 토르가 진지함과 책임뿐 아니라 유머와 인간성을 갖춘 리더로 변화하는 데 일조한다. 결국 『토르: 라그나로크』는 단순한 파괴의 이야기이자, 새로운 출발과 재창조의 서사다. 와이티티 감독은 ‘세계의 끝’을 웃음으로 덮는 파격적인 선택을 통해 MCU가 스스로의 틀을 깨고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이후의 『토르: 러브 앤 썬더』와 다가오는 새로운 서사의 실험에도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