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러브 앤 썬더 (Thor: Love and Thunder, 2022)
줄거리
영화는 토르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후 자신을 되찾기 위해 방황하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우주를 떠돌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함께 작은 임무들을 수행하던 그는, 내면의 공허함과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던 중, '신의 학살자'라 불리는 고르라는 존재가 등장해 여러 신들을 차례로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고르는 딸을 잃은 뒤 '네크로소드'라는 검의 유혹에 이끌려 신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토르는 고르의 다음 목표가 뉴 아스가르드임을 알고 급히 지구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오랜 연인이자 과학자였던 제인 포스터가 마이티 토르로 변신해 나타난 것입니다.
제인은 말기 암을 앓고 있었지만, 묠니르가 그녀를 선택하면서 신의 힘을 얻게 되었고, 그 대가로 체력이 점점 소모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토르와 제인, 발키리, 코르그는 고르를 막기 위해 연합하고, 고르가 신들의 멸망을 위해 '영원의 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 문을 통하면 소원을 단 하나 이룰 수 있는데, 고르는 이 힘으로 모든 신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고르를 설득하며, 결국 고르는 자신의 딸을 부활시키는 소원을 선택하고 자신은 사라집니다. 제인은 암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지만, 영웅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토르의 곁에서 떠납니다. 이후 토르는 고르의 딸을 키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고, 그녀는 '러브'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영화는 '러브와 썬더'라는 제목처럼,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중심으로 마무리됩니다.
신의 외로움
『토르: 러브 앤 썬더』는 MCU 4단계에서 토르가 겪는 감정적 혼란과 자기 재발견의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전까지의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왕자, 어벤져스의 일원, 전사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세계와 자신을 규정해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역할들이 모두 해체된 이후의 '허전함'이 중심에 자리한다. 그는 타노스와의 전쟁을 마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로 등장하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의 동행도 일시적인 도피일 뿐 진정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토르는 외부 세계와의 연결보다는 내면의 결핍과 마주하게 되고, 특히 제인 포스터의 재등장과 죽음을 통해 그가 잃은 것들과,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깨닫는다. 제인이 ‘마이티 토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르는 자신이 더 이상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며, 힘과 자격이라는 개념보다 '의미'와 '공감'이라는 감정의 가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영화는 '강함'의 정의를 다시 쓴다.
무기를 지녔기 때문에 강한 것이 아니라, 상실을 겪고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가 진짜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독한 신이었던 토르는, 사랑을 통해 진정한 소통과 책임의 감각을 배워가고, 마지막에는 '부성애'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가 신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적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코믹과 비극
《토르: 러브 앤 썬더》는 MCU 영화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코미디와 비극이 혼재된 작품이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특유의 유머는 이번에도 유쾌하게 녹아 있지만, 동시에 영화의 주제 자체는 매우 어둡고 진지하다. 핵심 빌런인 ‘신 도살자’ 고르(Gorr)는 단순한 악당이 아닌, 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뒤 절망과 분노로 돌변한 존재다. 그는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한 슬픔을 안고, 신들의 무책임함에 복수하려 한다.
그의 사연은 일면 타당하고 감정적으로 공감되며, 관객은 그가 전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영화가 선악의 구도를 흐리게 만들며, 토르와 고르 사이의 대립을 단순한 힘의 충돌이 아닌, ‘사랑을 잃은 존재들’ 간의 감정적 충돌로 만든다. 토르는 제인을, 고르는 딸을 잃었고, 두 사람은 각각 상실을 극복하거나 파괴로 전이시킨다는 점에서 거울상 같은 존재들이다.
영화 후반부, 고르가 결국 자신의 복수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딸의 부활을 택하는 장면은 MCU에서도 보기 드문 정서적 깊이를 갖춘 결말이다. 또한 이 장면은 토르가 다시 사랑을 믿고, 보호자의 삶을 택하게 되는 기점이 되며, 영화 제목 속 ‘러브’와 ‘썬더’가 각각 인물화되는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유쾌한 장면과 진지한 테마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불균형은 일부 관객에게는 산만함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이 충돌 자체가 영화의 의도된 감정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삶과 죽음, 믿음과 회의, 분노와 사랑이라는 이중 구조를 통해, 단순한 히어로 영화 이상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사랑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영화 내내 반복되고,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갈등의 해답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정제된 한 문장처럼 전달한다.